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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머리에

미국 개봉 11년 만에 국내 개봉되었던 1993년의 어느 날 영화관을 나서며 단지 이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차이에서 오는 도전이 있었다. 나중 만들어졌으나 먼저 보았던 같은 원작자의 작품인 영화 "토탈리콜(1989, Total Recall, 폴 버호벤 감독)"과는 또 다른 대단히 강렬하면서도 깊은 것으로 이후 "메트릭스"에서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는 바로 그.것. 이었다. 영화가 갖은 미덕 중 상상력의 시각적 실현이란 면에서 SF 장르는 실로 감사할 따름이다.

# 출연진

1.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릭 데카드 분)
블레이드 러너, 즉 리플리컨트(복제인간) 사냥꾼이자 비밀경찰이다.

2. 루거 하우어(Rutger Hauer, 로이 뱃티 분, 전투용 로봇)
전투용 리플리컨트, 본 글의 제목을 죽어가며 말한 복제인간이며 일견 오디푸스적인 면을 보이며 자신을 창조한 아버지와 같은 타이렐 회장을 제손으로 죽인다.

3. 션 영(Sean Young, 레이첼 분)
인간과 복제인간의 경계에 대한 모호성의 근본적인 논란을 야기시키는 리플리컨트이다. 주입된 기억에 의해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만, 결국 사실을 알고 난 후에 그녀 또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빠진다. 작가의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레이첼"은 UFO 연구소라고 일컫는 미국 네바다의 "51구역" 인근의 작은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감독에 관하여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가 기획 또는 제작한 영화를 차치하고, 감독한 영화제목만 몇 개 올려도 될 일이다.

1979 "에이리언(Alien)", 1982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91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2 "1492 콜럼버스(1492: The Conquest Of Paradise)", 2000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1 "한니발(Hannibal)", 2002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 2005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등 기억나는 몇 편만으로도 그의 역량은 미루어 짐작 가능할 정도다. 아울러 오늘(12월 27일) 개봉한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는 나를 설레게 하는 주요 작품이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영화는 소장 넘버 Top 10 속에 자리한, 블레이드 러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25주년을 맞아 베니스 영화제에 이 영화를 다시 들고 나왔다. 이 작품이 헐리웃에서 만든 그의 사실상 최초의 작품이다. 그전에 "에어리언" 등이 있었으나 유럽에서 제작되었고, 익숙하지 않은 헐리웃 스튜디오의 제작과정은 "수단이 목적이 되고 애초 의도한 것과는 다른 잡종의 영화가 나오게 됐다."고 말한다.

또한 "어느 순간 상업이 예술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원찮은 영화를 만들기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상업은 영화 산업의 중요한 부분이 돼 소통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창적 감각을 잃어버리면서 리메이크 영화들이 많이 생겨나게 됐다. 상업이 중요한 시점에서 이런 리메이크작을 자주 만나는 일은 슬프지 않나?"라고 말한다.


원작자에 관하여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의 저자 Philip Kindred Dick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 영화의 실패만을 간직한 채 사망한 저자 필립은 필자의 영어 이름을 차용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고, 한문으로 必立을 연상케 하기에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무엇보다 그의 단편들에 매료된 나머지 다른 이름은 생각도 하기 싫었었다. 어쨌든, 그의 다른 작품 중에서도 영화화된 것으로는 7~8편쯤 될 것이다.

  -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가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1990, Total Recall)"

  - "두 번째 변종(short story Second Variety)"이
    크리스찬 더그와이 감독의 "스크리머스(1995, Screamers)"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Minority Report)"

  - 오우삼 감독의 "페이첵(2003, Paycheck)" 등이 있다. 그리고 수십 편의 단편들…


영화에 관하여

스타워즈 이후 헐리웃은 SF의 상업성에 눈을 떴고,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는 "ET"가 미국을 살짝 들었다가 내려놓을 때였다.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가 "ET" 때문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레이건식 보수주의가 만연되었던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진보적인 영화가 성공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며 아울러 칙칙하고 어두운 화면구성에 영화 내용의 난해함은 지금도 흥행에 성공하기 힘든 류의 작품일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2019년 11월의 L.A. 영화 첫머리에 자막을 통해 상황을 설명한다.

"21세기 초, 타이렐사는 로봇을 넥서스 기까지 진화시켰다.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인간과 똑같았으며 복제인간이라고 불렸다. 넥서스 6기의 복제인간들은 그들을 창조한 유전공학자들보다 힘이나 민첩성 면에서는 월등했으며, 지적인 면에 있어서는 적어도 동등했다.

복제인간들은 세상과 격리된 곳에서 노예로 노동을 하거나, 위험한 탐사, 다른 행성의 식민지화 등에 이용되었다.

식민지에서 넥서스 6기의 전투팀이 유혈 폭동을 일으킨 후부터는 복제인간들이 지구에서 사는 것은 불법으로 공표되었고, 어길 시에는 사형이었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특수 경찰팀이 조직되었고 이를 어긴 복제인간을 발견하는 즉시 쏘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런 행위를 '처형'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폐기'라고 불렀다."

가까운 미래인 2019년의 미국은 양극화 심화현상의 극한을 보여준다.

400층 높이의 피라미드형 대형 빌딩 안에는 지배계급이 있고, 그들과 같거나 더 나은 형편의 지구인들은 이미 3차 세계 대전의 핵전쟁 이후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더 좋은 환경의 별로 이주했다. 영화 속 미장센(mise en scene)은 그 높은 빌딩의 바닥을 살아가는 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돌연변이와 유색인종, 특히 차이나 타운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인종들이고, 점수가 모자란 자격미달의 백인들이 더럽게 아주 더럽게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서도 리플리컨트 즉 복제인간은 그 타고난 능력에 비해 존중받지 못한 인간의 도구인 로봇일 뿐이다.

문제는 이 로봇의 진화가 지나쳤다는 것. 이는 타이렐사의 제조 모토인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을 통해 반추된다.


컨텐츠에 관하여

영화의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기로 하고, 이 영화는 여러 논란을 야기 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으뜸은 과연 주인공 "데커드는 복제인간인가? 아닌가?"일 것이다.

이 논란은 마니아층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다가 결국 감독이 "데카드는 복제인간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일단락된다. 아쉬운 부분이다. 이러한 논란은 지속될수록 많은 콘텐츠를 양산하는 것이건만…. 아울러 필자가 주목하는 이 영화의 화두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프리스(다릴 해나분, 위안부 리플리컨트)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위안부 복제인간은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를 인용한다. 즉, 인간으로서 모든 근원적인 것에 대하여 즉, 스스로 인간일 수 있는가에 관한 의심의 결과로 얻어낸 가장 확실한 존재인식적 결론을 말한다는 것.

영화는 내게 말한다.

"당신은 생각함으로 존재하고, 어떠한 생각을 하는가로 삶을 결정한다"라고.

프리스는 존재는 했으나 존재 이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것이 4년이라는 복제인간 수명의 한계였을까?

그래서 우리는 준비된 정치인다운 국회의원을 또한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것이겠지.

둘째, 인간의 기억은 정체성인가?

기억이 이식된 복제인간이 레이첼 뿐 아니라 감독의 친.절.한. 설명처럼 데커드까지라고 본다면 정체성 혼란을 겪은 레이첼이 데커드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보인다.

로이는 말한다. "우린 기계가 아냐 인간이라고." 이는 로이의 처절한 존재감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자기표현이기에 더욱 데커드보다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영화를 보는 동안 데커드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가 인간이라고 판단한 나를 조롱하는 감독의 의도가 과연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집에서 키우는 개를 인간은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개도 자신이 인간이라고 판단하고 인간과 같이 행동하며 더 이상 개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개에게 주어진 기억이 즉 정체성이 개로서 존재감 없이 인간의 기억을 "이식"시킨 때문이고 이는 '인간의 개'로서 데커드를 보지 못한 나를 조롱했다기보다 스스로 가진 기억에 정체성을 덮어두려는 "개 같은 삶"을 정산하라는 의도로 이해하기에 이른다.

로이터 통신이 그랬다지.

"대한민국은 보수정당의 개가 나와도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같은 방에서 자란 우리다. 개가 되지 말아야지. 기억에 의존하지 말자. 이제 영웅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해야 한다. 죽는 날까지.

셋째, 인간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서의 가장 큰 콘텐츠라는 것.

로이가 빗속에서 죽어가며 독백하는 장면은 전율을 일으킨다. 그는 거칠고 위험한 전투용 우두머리 리플리컨트였으나, 연인에 대한 사랑과 삶의 처절한 열정을 보이며 무엇보다 자신을 사냥하던 데커드를 연민하며 살려둔 채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에서 인간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인다.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그 기억이 모두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인간도 리플리컨트도 죽는다.

죽음이라는 화두에 도전하며 리플리컨트의 생명연장 목적을 소재로 한 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양극화의 그 끝을 보여준다.

미국은 세계 5%의 인구로(약 3억) 세계 30% 이상의 소비강국이다. 이것이 나누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며 이러한 과잉소비에 이제 중국까지 가담하기에 이른다.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전 세계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으며 식량, 석유, 자본, 정보 등에 거침없이 나누어져 결국 가족 간의 빈부격차조차 그 간극을 줄이지 못하는 세상으로 내 달리고 있다. 이러한 이기적 양극화를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또한 세계적으로 봉합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마지막 무기는 오직 인간의 죽음에 대한 도전뿐이다.

인간은 죽은 뒤 더 이상 자신이 개선할 수 없는 자기 정체성을 위해 사는 동안 이를 위한 개선의 노력을 할 것이며 이로 인해 끊임없이 이타적인 행동과 연민을 생산할 것이다. 이러한 선의의 사고와 행동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며 이를 유지할 콘텐츠를 또한 양산할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이제 돈벌이에 나서기로 결정한 만큼 돈의 개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며 돈의 노예가 된 자신을 반성하고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두렵다. 대운하가 두렵고, 양극화가 두렵다. 봉합하기에 너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미래가 두렵다.

로이는 말한다.

"공포 속에 사는 기분이 어때? 그게 노예의 기분이야."

Posted by goback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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