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혁명 (POWER VS FORCE)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1965년부터 1994년까지의 연구 결과



잠재력은 알고 있다


우주의 기본법칙은 경제성이다. 단 하나의 쿼크도 낭비하지 않는다.  만물에는 목적이 있고 그것들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우주에 무의미한 사건이란 없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는 어떠한 원인도 찾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란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마음은 사물을 미처 알기도 전에 움직인다. 우리의 행동이 심사숙고의 결과라는 생각은 허황된 망상이다. 마음은 수많은 자료와 그들 간의 상관관계를 꿰뚫어보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각할 수 있는 이해의 정도를 넘어서서 선택을 감행하는 것이다. 미리 선점하고 있는 끌개 패턴이 작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힘 덕분에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잠재력(power), 숨겨진 근원에서 비롯한 잠재력에 지배받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시키고 있는 엄청나게 강력한 끌개의 에너지 패턴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이해를 위한 기본 개념


운동역학은 육체가 마음과 동시에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질병이 진행되는 과정 뒤의 미묘한 메커니즘 안에는 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혀졌다. 행동이 생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체와 객체란 사실은 하나인 것이며 같은 것이다. 주체와 객체를 동일시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가장 정교하다는 인공두뇌보다도 더 완벽한 컴퓨터, 인간의 마음이라는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생명을 돕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것이 생존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이다.


의식 세계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비선형 동역학에서 비롯된 끌개의 개념을 차용했다. 이 끌개의 연구는 임계점 분석을 이용하여 에너지장의 범위를 찾아낸다. 임계점이란 가장 작은 힘으로 가장 큰 힘을 일으킬 수 있는 특별한 지점,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변화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지점을 말한다. 고등 이론물리학은 우주안의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에 은연중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끌개란 겉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방대한 자료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동일한 패턴을 말한다. 부조리하게 보이는 만물의 현상 속에는 조화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로렌츠는 장기간의 날씨변화를 그래픽으로 연구하여 나비효과를 발견했다.


지배의 장은 약한 에너지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고도의 에너지 패턴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거대한 전자장 안에 작은 자장이 공존하는 현상과도 같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다양한 힘을 가진 끝없는 끌개 패턴의 상호 작용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는 인과관계가 다음과 같이 작용한다고 생각해 왔다. A → B → C  사건은 순서에 따라 발생하므로 A가 B의 원인이고 B가 C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 A, B, C가 관찰되는 결과 A → B → C의 상황을 유발한다. 이 연구는 A → B → C를 순차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A, B, C라는 본래의 끌개 패턴을 찾아내는 데 있다.


                  A B C          끌개 패턴


                  ↙↓↘            연결 에너지


                A→B→C        관찰되는 사건


시험과 측정


운동역학은 근육이 육체에 이롭지 않은 자극을 접할 때 순간적으로 약해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반면에 치료에 도움을 주는 물체가 혀에 놓이자 근육이 순간적으로 강화되었다. 또한 마음이 완전히 풀어져 있는 자연 상태에서도 신체는 반응한다. 영양은 정서적인 안정이나 뇌의 작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정신병, 정서 불안정, 감정적 혼란은 생화학적인 신진대사의 비정상에 기인한다.


결국 육체는 건전하지 못한 감정적 태도나 정신적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순간적으로 약해진다. 우리는 다이아몬드 박사가 만든 근육시험 기법을 이용하여 15년 이상을 임상 시험했다.


질문은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나 사건에 대해서만 일관된 반응이 나왔으며 명확하지 않거나 미래에 대한 진술에서는 신빙성이 없었다. 눈을 감게 하는 등 서로의 감정을 배제하면 정확성이 높아진다. 그 상황을 마음속에서 계속 상상하도록 한다. 안경과 모자를 벗어야 하고, 팔에는 보석이나 시계가 없어야 한다.


시험자의 목소리가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고 가능한 질문은 그 범위가 좁아야 한다.


시험 결과


 인간의구원     깨달음   1,000    참나․의식․신성이 하나. 시공과 개별성을 뛰어넘음.

                            -700   항상 깨어 있음으로 완전한 하나.

                                     (크리슈나. 부처. 예수. 성인)

      ↑

 타인의 영적인

 눈 뜸에 기여    평화      600   초월. 자아실현. 주관과 객관이 하나. 특별한 관점 없음.

                                  절대 침묵. 시공 정지속의 활기. 온화하고 견고함.

                                 (영적지도자. 사회 큰공헌. 위대한 예술가,천만명중 1명)

                 기 쁨     540    존재의 매 순간마다 솟구치는 기쁨. 사랑의 증폭.

                                  역경 속에 인내와 긍정. 사랑과 평화를 전파.

                                  (생명체에 유익한 활동. 성인. 영적 치유자.)

       ↑

타인의 행복을 고려

통찰․통합(상징)   사 랑     500    조건없고, 변함없고, 영원한 사랑. 용서와 보살핌.

                                   너와 나의 공존. 문제의 핵심을 본다. 직관.

                                   장애물이 없다. 아름다운 삶의 계속. (천명중 4명)

       ↑

감정에서 벗어남

(상징과 그 뜻을

 구분하지 못함)  이 성     400    빠르고 정확한 판단. 관계의 미묘함 이해. 점진적

                                  변화 감지. 교육과 지식. 이해․정보가 성취의 동기.

                                  객관과 주관의 이원론. 모순을 해결하지 못함.

                                  숲을 못 봄. 통찰력이 부족.

       ↑

자신이 인생과

행복의 근원      포 용    350   인생․행복․사랑이 자신 속에 존재함. 사물을 전체적으로                                     이해. 균형과 조화. 지나치지 않음. 훈련과 일의 숙달.

                                  장기적인 목표 지향.  옳고 그름 보다 문제 처리 중점. 

                                  다양한 답변과 해결.

       ↑

 마음의 문 열기

 배움과 성장      자발성   310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 배움과 성장․향상. 친절. 사회․

                                  경제적 성공. 일을 만들고 해낸다. 자긍심.

                                  사회적 인정과 존중. 보상. 사회를 움직이고 기여.

 유연성․종합성

 긍정․건설적       중용     250   유연성. 포용력. 현실적 문제 파악. 허심탄회.

 내면의 변화                      인생을 수용함. 내면을 신뢰. 잠재력을 느낌.

 power (잠재력)                   편안함. 함께 지낸다. 정서적 안정.

       ↑                

살아남기의 분기   용기    200     탐구하고 성취. 결단. 도전. 인내. 성장과 교육.

                 (최근인류 204    삶이 흥미롭다. 시간과 기회를 활용. 생산성의 시발.

                  ,20년전 194)    ※ 200수준의 사람들은 자기가 흡수하여 소모하는

                                     에너지만큼 세상에 그 에너지를 돌려보낸다.

      ↓                     

force (외부 강압)

외부조건 의존     자존심   175    삶의 기초 버팀목. 방어적(추락 직전). 비난에 약함.

부정․파괴적                        오만과 부정(의식의 성장을 방해).

이원적 관점                        분열과 파벌주의. 민족․종교 전쟁. 테러.

생존을 위한 충동   분 노  150   지나친 욕망에 대한 좌절감이 분노를 일으킴.

에너지(감정, 본능)                 사회 부조리와 불평등. 사회 구조상의 희생.

낮은 성취동기                      건설적 또는 파괴적(증오, 폭발).  


                   욕 망   125   금전․명예․권력․육체와 성에 집착.(행동동기를 모름)

                                   탐욕은 만족시킬 수 없다. 대중문화와 TV에 휩쓸림.

                                   좌절감

       ↓ 

 에너지가 없음     두려움  100    세상은 위험하고 함정과 위협으로 가득하다.

                                  강박관념. 질투 유발. 만성 스트레스. 편집증. 신경증.

                                  언론․광고․독재자에 이용당한다.


                   슬 픔    75   바라보는 모든 것이 슬픔. 낙담. 비탄. 공허. 우울.

                                   과거를 후회. 실패가 생활. 만성 도박․음주.

                                   돈․건강․직장․친구․가족․기회를 잃은 사람.

       ↓                         ※ 무기력증 환자가 울기 시작하면 회복의 조짐

 노력과 감정이

 없는 상태         무기력   50    현재와 미래가 황폐. 희망 없음. 삶의 의욕 상실.

                                   빈곤. 절망. 자포자기. 허공 응시. 가만히 있음.

                                   자극에 무감각. 노숙자. 체념한 노인. 만성 중환자.


                   죄의식  30    자기 연민. 자기 학대. 피해의식. 남에게 기대고 의지.

                                   신체 질병 유발. 자살. 과격 종교에 빠짐. 동물 학살.


                   수치심   20    체면 깎임. 모욕 느낌. 사람 취급을 못 받는 느낌.

                                   사교 회피. 융통성 없는 완벽주의. 과격한 도덕주의.

                                   신경증. 열등감. 수줍음. 내성적. 혼자 지내기. 성폭행.

                                   피해망상. 정신병. 엽기 범죄. 공격함으로써 정당화.

                                  ※ 과거의 환경과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이 시험 결과는 스포츠, 의학, 정신의학, 심리학, 인간관계와 행복에 대한 일반적인 탐구에 이르기까지 실용적으로 쓰여질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사실은 결과물이라는 것이 명백해 질 것이다.


나를 지배하는 외부의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배움의 기회로 작용할 것인지 억압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 태도인 것이다.


의식의 단계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힘(force)과 인간에게 내재된 진실한 힘(power)을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은 지금껏 법률 행위나 전쟁, 조작, 규제 등 억지의 힘으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치료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사회의 갈등이란 근본적인 병인을 드러내고 치유하기 전에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치유하려는 사람은 문제의 앞뒤 관계를 파악하여 관점의 변화를 꾀한다.


의식의 측정 숫자는 대수의 값이므로 아주 작은 수치가 증가하더라도 그 잠재력은 굉장한 진보를 이룩했음을 뜻한다. 200 이하의 수준은 개인이든 사회이든 파괴적인 삶을 뜻하며, 200 이상의 수준은 잠재력의 건설적인 표현이다. 200은 잠재력(power)과 억지의 힘(force)의 분기점이다.



의식 수준의 분포


전 세계 인구의 의식 수준 분포는 뽀족탑을 그린다. 전인구의 85%는 200 이하에 속하며, 오늘날 인류 평균 의식은 204이다.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강력한 힘이 바닥에 깔린 사람들의 약한 에너지를 상쇄함으로서 평균치가 올라 간 것이다.

(500 이상은 0.4%, 600 이상은 천만명중 한 명)


지구 도처에 기근과 질병이 널려 있고, 정치 탄압과 사회적인 자원의 결핍으로 시달리는 나라도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기력 수준에서 절망과 비참한 빈곤에 빠져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두려움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250 수준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의 자기만족이 생기고, 의식의 진화를 위한 긍정적인 삶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태어났을 때 측정된 에너지장은 일생 동안 겨우 5점 정도의 증가를 보일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의 의식수준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 경험을 자신들의 타고난 에너지장(의식 수준)내에서 해석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진보를 이루지만 타고난 에너지장을 초월한다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백 이상의 수치에 이르는 갑작스러운 도약도 가능하다. 개인이 에고 중심적인 200 이하의 에너지장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친절하고 진실하고 착하고 용서할 줄 아는 태도를 취하고, 더 나아가 다른사람의 행복을 위한다면 그 높은 차원에 이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잠재력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엄청난 의지력이 밑받침 되어야 한다.


의식 수준의 측정치는 대수로 확장된다. 의식 수준 361의 삶과 361.1의 삶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서는 이러한 작은 차이가 세상전체를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의식수준의 측정이 새로운 지평을 연다


알코올이나 약물은 100 정도에서 측정되지만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가 경험하는 도취감은 350 ~ 600으로 측정된다. 이는 교향악에서 저음을 모두 제거하고 고음만이 들리도록 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높은 의식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고도로 강력한 에너지 상태를 규칙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에너지장이 낮은 에너지장인 근심, 공포, 분노, 분개 등으로 항상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높은 경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평범한 의식세계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게 된다. 명상을 통해 삼매경을 체험한 사람들과 죽음 언저리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한때 도달했던 그 높은 의식 상태에 다시 도달하고자 추구를 계속하게 된다. 이들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대전환을 이룰 수도 있다. 높은 의식 상태는 사랑이나 종교, 고전음악이나 미술, 영적 수련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황홀경이란 특수한 상황 아래서 자신들 내면에 지금 있는 그 무엇을 경험한 것에 불과하다. 자신의 본질인 흠 없고 완전한 밝음을 순간적으로 되찾은 것이다.


도취감이란 자기가 속해 있는 일상의 의식 수준을 넘어선 경험을 말한다. 사람들은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의 의식으로 진전되는 과정에서 도취감을 느낀다. 고도의 의식 상태를 단 한 순간 경험했을지라도 그 순간의 경험은 인생에 대한 생각이나 목적, 가치관을 온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옛날의 자기가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계층은 엄격하고 금욕적인 윤리에 의한 사회 통제를 수단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을 얻어냈다. 예를 들어 유혹이나 선전은 합법화해놓고 그 유혹이나 선전이 시행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삶의 기쁨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지는 특권임에도 지배계급은 도덕률과 가치관을 조장하여 대중의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착취해 오지 않았는가.


의식의 측정과 진단은 재료 연구, 제품 개발, 과학 연구, 의학, 신학, 인식학, 철학, 상업과 무역 등 모든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또 어떤 프로젝트나 각 개인들의 목표와 동기, 안건에 대해서도 감정할 수가 있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 동기나 의식의 수준을 알아낼 수 있다.



영성을 찾아서


내 몸이나 마음이 나 인것이 아니라, 내가 몸이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을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든다.


모두가 각자의 의식 수준을 스스로 선택했고 어느 누구도 주어진 시점에서 달리 선택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곳으로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도약에는 발판이 필요하며 고통은 진화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하여 배움을 얻기까지 그토록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바닥을 치고 솟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인간의 문화는 진화의 발걸음을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더욱 생명답게 빛내기 위해 우리가 한 모든 일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 우리는 생명 자체다. 너에게 좋은 것은 나에게도 좋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사실임에 틀림 없다.


우리가 행동이나 동기를 바꿀 때 이 변화는 에너지장에 작용하여 좋은 방향으로 반응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여 준다. 내면의 추구는 은행구좌에 계속 적금을 하는 것과 같지만 그렇다고 그 구좌에서 아무 때나 돈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진실이란 아무데서나 항상 스스로를 드러낸다.



잠재력의 근원


잠재력(power)은 표면의 힘(force)보다 강하다. 잠재력은 의미, 행동 동기, 원리 원칙, 인간 본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잠재력은 정신의 앙양과 고귀함에 호소하지만 표면의 힘은 합리성과 정당성을 요구한다. 잠재력은 전체와 관련이 있지만 표면의 힘은 부분과 관계가 깊다. 잠재력은 중력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장이지만 표면의 힘은 운동과 같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거나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잠재력은 아무 것에도 거슬리지 않지만 표면의 힘은 항상 어떤 것을 거슬러 움직인다. 잠재력은 자체로 완전하지만 표면의 힘은 불완전하고 항상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 잠재력은 힘을 북돋아주고, 손을 내밀어주고, 채워 주고, 도와주지만 표면의 힘은 끝없는 욕구 때문에 항상 소모된다.


잠재력은 생명과 에너지를 주지만 표면의 힘은 생명과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잠재력은 자비심과 관련되어 자신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지만 표면의 힘은 판단과 관련되어 자신에 대해 나쁜 느낌을 갖게 한다.


표면의 힘은 항상 이에 반하는 또 다른 힘을 초래하며, 하나로 만들지 않고 분열시킨다. 분열은 언제나 갈등을 의미하며, 항상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분열은 승패의 가름을 요구하고 항상 적이 생기게 마련이다. 적과 대면해야 하므로 늘 방어의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비용을 치러야 한다.


잠재력은 그냥 있을 뿐이며 자명하며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건강이 질병보다 중요하고, 생명이 죽음보다 중요하고, 명예가 불명예보다 낫고, 믿음과 신뢰가 의심과 냉소보다 더 낫고, 건설적인 것이  파괴적인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표면의 힘은 구체적이고, 산문적이고, 논쟁적이며, 증명과 보장을 요구한다.


잠재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동기 부여를 한다. 자존심, 목적의 고귀함, 삶의 질을 위한 희생은 감동적이고 삶에 의미를 주며, 이런 의미를 상징하는 것들이 잠재력을 불러일으키고 동기를 유발한다.  표면의 힘일시적인 목표를 갖는다. 하지만 목표가 달성된 후에는 무의미한 공허만이 남는다.


잠재력은 기쁨을 안겨주지만 표면의 힘은 만족을 안겨준다.

자신에 대한 승리는 기쁨을 주지만 타인에 대한 승리는 만족을 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강한 끌개 패턴은 우리를 강화시키고 약한 끌개 패턴은 우리를 약화시킨다. 잠재력은 우리를 강화시키고 표면의 힘은 우리를 약화시킨다. 사랑, 자비, 용서는 굴복과 패배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강력한 힘이다. 복수, 비난, 힐난은 모두 약한 반응을 보인다. 장기적으로 약한 것은 결국 강한 것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임상적으로 나타난 진실이다. 강력한 끌개를 위해 약한 끌개를 포기하라.



삶의 자세와 잠재력


우주는 잊는다는 것을 모른다. 누가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매순간 선택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우리는 매순간 자신의 천국과 지옥을 창조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 선택, 결정, 행동은 우주 속에 파장을 일으키고 전체의 생명체에 영향을 끼친다. 삶을 돕기 위해 하는 행동과 결정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삶에 도움을 준다.


우리가 만드는 물결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모든 생각, 말, 동기, 행동은 저절로 알려지게 되고,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 거기에는 어떠한 비밀도 없으며, 숨겨진 것도 없고 또 숨길 수도 없다.

우리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서 있다.


   강한 에너지 <=> 약한 에너지            강한 에너지 <=>  약한 에너지

   가르치는         설득하는               영적인            물질적인

   건설적인         파괴적인               용기 있는         만용의

   검소한           낭비하는               융통성 있는       경직된

   고상한           과시하는               이끌어 가는       강요하는

   권위적인         독단적인               인내하는          탐욕스런

   깨어있는         고정관념의             인정하는          부정하는

   낙관적인         비관적인               자발적인          강제적인

   너그러운         각박한                 자비로운          동정하는

   따뜻한           열광적인               전체적인          부분적인

   매력적인         유혹적인               점잖은            건방진

   명석한           약삭빠른               조화로운          극단의

   민주적인         독재적인               존재하는          소유의

   믿는             고집하는               주는              빼앗아 가는

   받아들이는       거절하는               즐거운            광적인

   변치 않는        변덕스러운             진실한            거짓의

   본질의           피상적인               질서의            혼동의

   부드러운         딱딱한                 친절한            잔인한

   북돋우는         촉구하는               통합하는          분석하는

   소중히 하는      보상을 바라는          평등한            우월한

   수용하는         움켜쥐는               평화적인          호전적인

   신사적인         거친                   포용하는          비판하는

   애국의           국수주의의             하나의            나누는

   열린             비밀의                 해방하는          한계를 짓는

   영감을 주는      세속적인               허심탄회한        계산적인

   영원한           잠시의                 허용하는          통제하는



정치와 잠재력


미국헌법, 권리장전, 독립선언문, 게티스버그 연설은 700의 높은 수치로 규정된 원칙을 담고 있다. 간디는 보편적인 법칙(700)에 호소하여 뭉치게 함으로써 거대한 대영제국을 굴복시켰다. 식민주의(175)는 통치 국가의 이익 추구라는 원칙으로 운영되었다.


처칠은 잠재력을 견지했고 히틀러는 표면의 힘을 대표했다. 잠재력은 겸손하며 결코 젠체하지 않는다. 표면의 힘은 거만하고 유혹적이며 애국심, 명예욕, 지배욕으로 위장하는 마력을 지닌다.


정치가는 잠재력을 쓰고 정치꾼은 표면의 힘을 이용한다. 잠재력은 방어할 필요가 없고 자명하다. 표면의 힘은 미사여구, 선전, 허울 좋은 정책에 의존하여 사람들을 선동하고 항상 변명을 한다.


잠재력은 생을 돕는 것과 연관되고, 표면의 힘은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삶을 착취하는 것과 연관된다. 잠재력은 통합적이고 표면의 힘은 분열적이다. 잠재력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지만  표면의 힘은 자기 봉사만을 뜻한다. 잠재력은 성숙과 절제와 인내를 요구하지만 표면의 힘은 빠르고 쉬운 해결방법을 찾는다.



시장경제와 잠재력


월마트의 고용인들은 고객들을 보살필 줄 알고 따뜻하고 활기에 넘쳐 있다. 월마트상점은 고객이 아픈 다리를 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고용인들이 가족처럼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사업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대접받고 부양받고 있다고 느끼는 고용인들은 생산성이 높고 고객에게 진실하게 대한다. 성공적인 사업체는 좌뇌에 의한 과학적인 경영보다는 마음을 더 중시한다. 미국의 자동차 업계는 질의 유지보다 수명을 미리 결정하는 전략으로 인해 실패했다.


고객들을 강화시키는 광고는 고객이 그 상품에 혐오감을 갖지 않고 항상 긍정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시청자를 약화시키는 광고는 고객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게 한다.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흑백논리만을 구사하거나 상황 윤리에 의존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칙은 잠재력에 있다. 잠재력은 승/승의 해결을 가져오지만 표면의 힘은 승/패를 초래한다. 약한 에너지의 끌개장은 반대편의 투쟁을 부른다.



스포츠와 잠재력


장거리 주자들이 뛰는 동안 평화와 기쁨의 상태에 도달한다. 운동선수 들이 혼신을 다함으로써 갑자기 기록의 장벽이 무너지고 동작이 유연해짐을 볼 수 있다. 이때 운동선수의 육체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종되듯이 우아하고 조화로운 아름다움으로 움직인다.


슬로 모션 기법을 통해 보면, 운동선수들의 느린 동작이 가져다주는 감동, 아름다움과 우아함 등이 높은 의식 세계로 빨려들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피 댄서들은 피나는 훈련과 연습으로 오랫동안 정확한 동작으로 힘들이지 않고 춤을 춤으로써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운동선수들의 기록 돌파는 그들의 엄청난 노력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벽 돌파는 개인이 아닌 더 큰 힘에 의해서였다는 것, 이제까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또 하나의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진정한 스포츠의 힘은 우아함, 예민함, 내적인 고요, 그리고 치열한 경쟁자의 삶 속에서도 존재하는 비투쟁적인 온화함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경하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것, 그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그 자체이고, 이것이 모든 인류를 감화시키는 것이다.



자조(self-help)와 잠재력


영성이란 말은 관대함을 내포하지만 종교는 항상 독선을 내포하고 있다. 영성은 평화를 초래하는 반면 종교는 갈등과 유혈, 종교 범죄 등을  초래한다. 하지만 모든 종교의 내면에는 그것이 생겨나게 된 영적인 기초가 깔려 있다.


55년의 역사를 가진 알코올 중독자 갱생회는 자유를 존중하며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그들의 잠재력 패턴은 정직, 책임, 겸손, 봉사, 포용, 호의, 우애 등이다. 그들은 특정한 윤리에 집착하지 않고 옳고 그름, 선악의 규칙이 없으며, 도덕적인 비판을 삼간다. 그들은 구성원뿐 아니라 어느 것도 통제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 대신 스스로 앞길을  정한다. 그래서 충만한 삶을 찾아 간다.


자조그룹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한계점을 시인할 때 참된 잠재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의학과 첨단 과학보다도 잠재력이 그들을 회복시켰다.


원칙이 갖고 있는 잠재력은 시간과 관계가 없으며 변하지 않는다. 높은 끌개장의 힘은 흔히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기는 한 조각 헝겊에 물감을 입힌 것에 불과하지만 국기가 상징하는 것을 위하여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다. 그 힘이란 의미와 정신세계에서 온다.



예술과 잠재력


여러 세기에 걸쳐 우리에게 전해진 위대한 미술, 음악, 건축 작품들은 높은 끌개 패턴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걸작들을 통해 문명을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들이 절대와 은총, 인간의 존엄성에 헌신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예술의 아름다움에 눈뜰 때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과 민감성이 자라나기 시작하며, 혼란한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즐기고 기쁨을 갖게 된다.


사랑 없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영혼을 짓는 것이며,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합작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음악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 춤을 추게 하며, 사랑과 창조의 절정에 오르도록 고무시킨다. 고전음악은 대부분 아주 높은 잠재력의 패턴을 보여준다.


성당은 건축물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측정된다. 성당은 음악, 조각, 그림, 공간 설계 등 여러 예술적 요인이 결합되어 세워진 것이다. 성당은 우리들에게 영감을 주고, 인간 내면의 가장 고귀한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고, 가르치고, 상징하며, 그것을 위해 봉사한다.


우아함은 미적 감각에 대한 잠재력의 표현이다. 우아함은 고상함, 세련됨, 낭비 없는 노력과 연관된다. 우아함의 힘은 삶을 인정하고, 돕고,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지켜준다. 우아함은 조건 없는 사랑의 한 단면이며, 관대함을 의미한다. 우아함은 정숙과 겸손을 뜻한다.


아름다움은 다양한 문화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아름다움이란 보는 이에게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바뀌지 않으며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형태만이 바뀔 뿐이다. 높은 의식 수준의 사람들은 모든 형상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들에게는 모든 생명이 신성할 뿐 아니라 형상을 갖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창조성과 잠재력


역사란 천재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명백한 진실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투쟁 기록이다. 천재는 높은 에너지 끌개 패턴(의식)에 접근할 능력이 있다. 천재들의 고민은 그들이 이해하는 사물을 남들에게 어떻게 표현하고 이해시키는가에 있다. 그들의 이해는 완전하고 자명하지만 남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일생이 걸리는 힘든 일이 된다.


우주에는 행운이나 우연적인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아무도 우주로부터 제외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우주의 구성원이며 의식도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천재는 의식의 특징이므로 천재 또한 어느 곳이나,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다.


천재성은 모든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다. 다만 천재성을 발현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동안 천재의 순간을 경험한다.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 하거나 패러다임이 바뀜으로써 천재성이 발휘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눈뜸에 겸허해 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천재의 능력을 계속적으로 발휘하게 된다.


천재성은 풀 길 없는 의문과 아무런 보상도 없는 싸움을 벌인 끝에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문득 날개를 털고 일어나는 그 무엇이다. 패배에서 승리가 나오고, 실패에서 성공이 나오고, 겸손에서 자존심이 나온다.


천재들의 생활방식은 간소하다. 그들은 삶을 존중하고, 사물의 근본적인 가치를 보며, 독창성의 자원과 경제성을 중시한다. 조용한 생을 즐기며 필요한 경우 외에는 나서지를 않는다. 


영감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하루에 20시간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자기 일에 열중할 수 있다. 집중력은 언뜻 침체의 기간으로 보이지만 실은 창조를 위해 필요한 발효기간일 뿐이다. 재능 하나로는 천재가 되지 못한다. 천재는 인내, 용기, 집중, 끌고 나가는 강한 힘, 절대적인 정직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천재들은 말한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분야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성공과 잠재력


전인적 인격체로서의 성공이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성공적인 삶의 방식을 뜻한다.


부, 권력, 명예, 인기를 얻은 사람도 자신의 에고를 왜곡시켜 작은 자아를 강화시킨다면 파멸로 가기 쉽다. 작은 자아는 재능을 뽐내고, 거만하고, 자만심에 차 있고, 남을 지배하려 한다. 큰 자아는 성공에 겸손하고, 재능을 감사의 대상으로 돌리는 성숙된 모습이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마음이 열려있고, 따뜻하고, 성실하고, 성공을 자신이 해야 할 책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고, 친절하고 사려가 깊으며, 거만하게 행동할 이유를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잘 난 것이 아니라 행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봉사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믿고 있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ABC를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성공을 A→B→C의 범주 내에서 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성공의 첫 단계에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을 중시한다. 즉 눈에 보이는 물질적 부에 따라 위상이 결정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 가가 중요하다. 즉 개인의 지위나 활약상에 따라 위상이 달라진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인생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결국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전념하게 된다. 이들은 내면의 잠재력이 갖는 우아함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내뿜는 강력한 끌개 에너지를 느낀다.


진정한 성공이란 왜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까?

전류의 힘이 클수록 자기장의 범위는 더욱 커진다. 자기장은 주변의 모든 것들에 영향을 준다. 멋진 승리자들은 사람들이 찾기 마련이고, 사려 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



건강과 잠재력


지혜로워짐으로써 우리는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부유해진다. 높은 에너지와 결합하면 건강이 오고, 낮은 에너지와 결합하면 질병이 초래된다. 높은 힘의 끌개 에너지는 뇌에서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켜 모든 기관을 튼튼하게 해주지만, 해가 되는 자극들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하여 면역 반응을 억누르고 장기를 약화시킨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은 긍정적인 태도와 관계가 있으며, 질병은 노여움, 시기, 적대감, 자기 연민, 공포 같은 부정적인 태도와 관계가 있다. 정신의학에서 볼 때 긍정적인 태도는 복지의 감정이고, 부정적인 태도는 응급(emergency)의 감정이다.


스트레스는 인간의 수많은 질병과 병변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스트레스는 개인의 태도에 의해 내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은 인생의 사건들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운동역학 시험에서 인공 합성물, 플라스틱, 인공 색소, 방부제, 살충제, 인공감미료 등은 약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순수하고 유기적이거나 사람의 손이 간 것들은 강한 반응을 보여준다. 영양은 뇌와 혈액의 환경에 영향을 주고 행동과 감정, 정신적 병변에도 깊은 관계가 있다.


모든 태도, 생각, 믿음 등은 에너지의 경락이라 불리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신체의 장기와 연결되어 있다. 비선형 동역학과 임계점은 입력에서의 아주 작은 변화가 출력에서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작은 변화의 반복은 점진적인 에너지의 증진을 가져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태도의 우주가 신체의 습관적인 반응의 결과로 가시화될 수 있다.


전통적인 의학은 저절로 고쳐졌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 갱생회에서는 인격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치유될 수 없다고 말한다. 희망 없는 불치병에서 치유된 환자들에게는 의식의 대전환 현상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치유된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능력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현저하게 커진 것을 본다.


어떠한 질병이든 그 치유는 자기 자신과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자발적인 태도에 달려있다. 믿음의 체계가 흔들릴 때 겪게 되는 내면의 두려움을 이겨 나갈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비밀스럽게 미움과 억울함, 원한이나 복수심, 적대감을 감춘다 해도 그것은 우리 몸에 생리학적인 공격을 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에 웃음과 유머는 우리 생활에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정의를 강조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은 평화의 적이다.


건강, 효율성, 번영이 현실과의 조화와 균형에서 오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믿는 이상, 이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불행을 외부로 돌리지 말고 자신의 내적인 반성에 정진해야 한다. 질병이란 마음의 작용이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세상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황이란 없다.


500 이상의 의식수준에서 본다면 죽음이란 환상에 불과하며 삶이란  계속되는 것이다.



의식의 데이타베이스


칼 융은 패턴과 상징을 연구한 후 집단 무의식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이 집단 무의식을, 강력하고 우주적이고 조직적인 패턴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인간 의식의 거대하고도 숨겨진 데이터베이스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검색 과정을 기다리고 있는, 정보의 거대한 창고이다. 여기에는 사람들의 육감, 직감, 신통함, 꿈,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얻는 모든 정보의 원천이 있다. 이것은 천재성의 원천이며, 영감의 샘물이며, 신비로운 예지의 근원이다.


의식의 데이터베이스는 충전된 배터리라기보다는 잠재력을 지닌 정전기의 콘덴서와 같다. 질문과 해답은 같은 패러다임에서 나오며, 아래가 없이 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는 순서에 따라 일어나기 보다는 동시에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 (칼 융의 동시성) 여기의 사건이 저기의 사건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두 사건은 동시에 나타난다.

두 사건은 두 사건을 동시에 포함하는 동급의 에너지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눈앞에 현현하는 우주 전체는 동시적인 표현이며 경험 그 자체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이 모든 것은 실재도 아니며, 비실재도 아니며 단지 있을 따름이다. 있는 것은 모든 관점에서나 무의 관점에서나 있는 것이다. 음과 양, 나타나는 것과 나타나지 않는 것,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간과 무시간을 포함하여 궁극적인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동시에 참된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우주는 매우 협조적이다. 우주가 의식 자체와 다르지 않은 만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창조해 낼 수 있고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시간은 관점의 이동에 따라 나타나는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홀로그램에는 시작이나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이미 완전하게 존재한다. 포갠 우주도 펼쳐진 우주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인식되는 우주만 있을 뿐이다.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여행자 앞에 풍경이 펼쳐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펼쳐지는 것은 없으며, 그 무엇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존재할 것인가 저렇게 존재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러나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 뿐이다.



의식의 진화


사람들은 평생 동안 평균 5점 정도의 의식 진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평생 수많은 경험을 통해 불과 몇 가지의 교훈만을 배우는 셈이다. 지혜를 얻는 것은 더디고 고통스럽다. 아무리 익숙한 관점이라도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면 서슴없이 버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성장과 변화에 대한 저항은 이처럼 심각하다.


성장과 발전은 불규칙적이며 직선적이 아니다. 의식의 향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꺼이 하는 태도다. 자발성은 사물에 대해 새롭게 평가하고, 새로운 가설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의식의 수준에는 두 개의 분기점이 있다. 200의 수준은 잠재력을 차음 느끼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남을 비난하지 않고, 자기의 느낌,  믿음,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줄 아는 성숙이 시작된다. 500의 수준은 사랑, 비판 없는 용서, 모든 사람․사물․사건들에 대한 예외 없는   무조건의 친절함이다. 이런 믿음으로 행동하면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고 의식은 점차 진화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홀로그램과 같다. 특정한 관점들은 그의 독특한 의식 수준의 반영일 뿐이다. 홀로그램의 한쪽에 서 있는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른 쪽에 서 있는 사람과 전혀 다르다.


600 이상의 수준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완전하고 동시성인 홀로그램의 가능성 속에서 말로 표현되기 힘든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시간이 초월된 상태에서 순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지금이라면, 거기에는 여기서 저기로 따라갈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홀로그램은  인과관계가 아닌 동시성의 끝없는 비선형 사건의 반영에 불과하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반응하고 있는 세상이 달라진다.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인식에 따라 결정된다. 의식의 흐름, 즉 생각과 인식, 느낌과 기억의 패턴은 끌개 에너지장이 이끌고 나간다.


자존심은 의식의 진전을 방해하기도 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세상 경험만이 정학한 것이라고 비밀스럽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마음은 자신의 옳음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정(否定)의 과정을 밟는다. 이러한 부정성이 사람의 평생 동안 의식 수준을 5점 정도밖에 진정시키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의식의 커다란 진전은 내가 안다는 착각을 버릴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인생이란 배움의 터전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삶은 진정한 스승이 되어 줄 것이다.


앎 자체 속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앎은 경험한 것을 단지 기록할 뿐이다. 마음이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감각이 경험한 바를 보고할 뿐이다. 오직 경험을 경험하는 것만 할 수 있다.

마음은 순수하여 잘 속아 넘어간다. 그래서 분별할 줄 알고, 늘 깨어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음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의식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다 안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해 질 때 앎의 성숙이 시작된다. 우리가 곧 마음 자체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우리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바라본다.

생각, 믿음, 느낌, 견해의 주인은 바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우리의 모든 생각들은 거대한 의식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빌려온 것에 불과하고, 우리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순수 의식


의식 없이는 형태를 경험할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형태는 순간적이며 한계가 있는 반면, 의식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무한하다. 의식이란 존재의 한 양상으로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기 한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인간이란 존재의 한 표현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신을 물질적인 육체와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을 제한하기 쉽다.

물질적인 육체의 존재 → 감각이 보고해 옴 → 마음이 육체를 경험 의식의 내용만을 본다면 자아를 그 만큼 한정하는 것이 되고, 자아를 의식 자체와 동일시할 때에야 우리는 깨달은 사람이 된다.


순수 의식의 경험이 갖는 특성의 하나는 시간 관념의 상실이다. 의식은 모든 형태나 시간을 초월하여, 어느 것에나 똑같이 나타날 수 있으며, 있음, 존재, 스스로 존재하는 나, 부분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로 표현된다. 생각이 자유로운 상태에서도 이미 알고, 완전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무엇을 필요로 하거나 원치 않으며, 자아가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끌개 패턴에 동승하는 것이다. 그 열쇠는 의지이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택의 행위이다. 혼돈 이론에서 보여주는 초기 조건에의 민감성은 영적 진보를 위한 과학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개인의 앎의 향상은 기꺼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자발성의 지속이야말로 낡은 끌개장을 떠나 새로운 장으로 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자유 의지, 선택과 진화의 과정은 교차점을 이루고 결국 변화를 이끈다.


어떤 성인들은 자신이 성취한 경지는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 밖에서 오는 커다란 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낮은 수준의 사람이 지신을 높은 수준의 영향 하에 놓을 때 나타나는 삼투현상이다. 이들에게는 늘 뚜렷한 계기가 있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기도와 명상이 높은 수준의 비약에 발판이 된다.



지구의 의식 수준


지구상 인구의 15%가 분기점인 200 이상의 의식 수준에 속하지만 15%의 집단적인 힘은 전 인구 85%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쇄시킨다. 현재 지구에는 700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12명 존재한다.


7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7천만 명을 상쇄한다.

6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천만 명을 상쇄한다.

5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75만 명을 상쇄한다.

4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40만 명을 상쇄한다.

3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9만 명을 상쇄한다.


하루에 몇 번씩 일어나는 사랑스러운 생각은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사랑 : 10-350만        두려움 : 10-7억5천만 마이크로와트



앞으로 나아 갈 길


개인의 작은 향상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전 인류의 의식 수준은 몇 세기 동안 190에 머물렀으나 1980년대 중반에 갑자기 204의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이제 위로 전진할 수 있는 발판 위에 서게 되었다.


우리는 200 이하의 정치조직, 공공기관, 공무원을 거부할 수 있다. 사회 문제 해결에 심각한 위험은 내면을 비밀스럽게 정복하는, 조용하고 보이지 않는 억지의 힘이다. 부정적인 끌개장들은 대중 의식에 편중하여 다채로운 수식어와 상징 조작으로 겉만 요란하게 꾸미게 마련이다. 인기 있는 사이비 철학은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영적인 통찰력과 종교성을 내세우는 문헌들도 보이지 않게 파괴를 불러 온다.


이러한 부정적 요인을 무서워하거나 싸우려 하지 말고 단지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두움은 직접적인 공격에 의해서 해결되지 않고 분별의 빛을 비춤으로써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깨달음에 겸손하게 자신을 맡길 때 발전의 준비를 갖추게 된다. 우리는 속기 쉽고, 감각에 의해 쉽게 유혹되며, 육체적 지적인 매혹의 환상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원적인 세상에서 파괴적인 것을 즉시 알아내어 아직 모르는 마음에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의식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지혜란 궁극적으로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을 피하는 과정이다.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구원은 가능한 일이다. 구원이란 사랑의 생각이 부정의 생각보다 훨씬 힘이 크다는 사실에 보장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속에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에고와 동일시되는 마음은 한계를 지니고 있어 진실을 이해할 수 없다. 에고를 초월한 마음의 패러독스를 넘어서야 만이 존재는 마음의 무한한 절대성 속에서 스스로를 빛나는 자리에 세울 수 있다. 그럴 때 모든 말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또한 우리 모두의 눈멀음에 대한 자비심이 우러나와야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인류는 이제 비로소 자신들의 앎과 행동에 훨씬 진지해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집단적인 깨달음의 진화를 꾀할 수 있는 지점에 와 있다.



저자가 겪은 ‘내 영혼의 여정’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나 자신이나 에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무한한 힘을 가진 무한한 존재만이 있었다. 세상은 이 무한한 하나의 밝음으로 비치기 시작했고, 하나는 만물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완전함 속에서 자신을 드러냈다.


이러한 고요함은 9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자신의 의지를 갖지 못했다. 내 육체는 무한하고 강력하고 끝없이 부드러운 존재의 의지에 완전히 통솔되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진실은 자명했고, 어떠한 개념화도 불필요했다. 신경계는 극도로 피로해졌다. 순환에 필요한 허용량 이상의 에너지가 몰려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걱정과 두려움, 세속적인 동기들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완전했으므로 아무 것도 더 추구할 필요가 없었다. 명성도, 성공도, 돈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개업을 다시 하고 환자를 치료하고, TV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책을 썼다. 나의 신경조직의 병변은 차츰 회복되었고,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달콤하고 유쾌한 에너지의 줄이 척추에서 뇌로 흐르기 시작했고, 강렬한 열락의 세계에 나를 맡기곤 했다. 삶의 모든 것들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일어났고, 모든 것이 다 기적이었다. 나 자신이나 내 생각보다 위대한 그 ‘나’(위대하신 분의 현존)가 모든 일을 결정했다.


나는 부처, 후앙 포, 라마나 마하리시, 니사가다타 마하리지 등의 영적인 가르침을 읽기 시작했고, 이런 경험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바가바드 기타, 스리 라마 크리슈나, 크리스찬 성인들이 묘사한 영적인 엑스터시 상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광채를 띠고 있었고, 절묘하게 아름다웠다. 살아 있는 만물이 고요함과 찬란함 속에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내적인 사랑으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고 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침과 저녁에 하던 한 시간의 명상을 그만 두었다. 명상을 통해 오는 기쁨이 너무나 커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황홀감을 떠나 세속으로 돌아오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만물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완전함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추악하다고 보는 것 속에서도 나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이러한 영적인 사랑은 내 모든 지각을 채웠다. 여기와 저기, 그때와 지금,   너와 나라는 모든 경계선이 사라졌다.


여러 해 동안 내면의 침묵에 잠겨 있었고 위대한 그 분의 힘은 커져 갔다. 개인적인 생활이 없어지고 그 분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분이 내뿜는 오라(aura) 속에서 기이한 평화를 느끼곤 했다. 그들은 나에게 해답을 구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참나로부터 해답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나의 참나가 비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어떻게 그들의 육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놀라왔다.


여러 해 동안 고통 받았던 지병들이 사라졌다. 시력은 저절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가끔씩 나는 축복의 에너지, 무한한 사랑의 에너지가 내 가슴에서 방사되는 것을 느꼈다. 어떤 때는 떨어져 보여야 할 물체와 사람들이 하나로 융합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절대의 침묵 속에서 나는 아무런 사건들도, 사물들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고통은 나라는 에고가 존재한다는 환상에서 온다. 자신이 곧 우주이고, 완전한 존재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과 사실은 모두 하나이며, 끝이 없는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고통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그 중에는 극도로 절망적인 환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불구의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나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정수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내면의 평화를 느끼게 됨에 따라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위대한 그 분의 자비심이 치유를 한 것이다.


나는 세상을 떠나 시골에서 은둔하기 시작했고, 7년 동안 명상과 연구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영적 수련을 그만 두고 다시 연구와 저작 활동을 하기로 했다. 세상과 사귀기로 하고 사회적 관심사를 알게   되었다. 나는 평범한 존재 자체가 곧 신성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이유에서 한껏 평범해지기로 작정했다. 일상의 삶 속에서 관심과 친절을 갖고 사는 것이다.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드러난다. 다시 나는 위대한 그분의 힘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분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도록 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위대한 존재는 침묵 속에서 평화를 실어 나른다. 그 분은 온화하지만 바위와 같다. 그분과 함께 있으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영적인 기쁨은 설명할 길 없는 고요한 황홀 상태에서 나타난다. 시간이 멈추고,  근심 걱정, 후회, 고통, 어떠한 기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쁨의 원천은 끝이 없으며, 언제 어디에나 있다. 시작도 끝도 없고, 더 이상 상실감도 없고, 슬픔이나 욕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완전하고 흠이 없다.


시간이 정지할 때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육체와 마음의 분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음속에서 침묵이 점점 커져서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사라지게 되면 순수 의식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 빛을 비추어 줄 것이다. 온 우주와 시간을 초월한다.


이런 의식 수준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단순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아무 예외 없이 누구라도 무엇이든지 용서하는 법을 배워 나간다. 모든 것에 자비심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이나 생각들에 대해서도 자비로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어느 순간에나 자신의 의지를 항복시켜 치미는 욕망을 멈출 수 있어야 한다. 하나하나의 생각, 느낌, 욕망, 행위를 그분에게 바쳐야 한다. 처음에는 문장과 구절을, 그 다음에는 생각과 관념을 바친다. 자신의 생각을 소유한다면 결코 이런 상태에 이를 수 없다.

나는 생각으로 무르익기 이전의 에너지까지도 그분께 맡길 수 있었다.


일상적인 활동을 해 나가면서도 나는 언제나 정신을 집중하여 초점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명상하는 동안에도 산만해지는 순간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점차 습관이 되어 갔고, 나중에는 힘 들이지 않고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 과정은 로켓이 지구를 떠나는 과정과 흡사하다. 처음에는 막대한 힘이 필요하지만 일단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나면 스스로의 타성에 의해 움직인다.


홀연히, 아무런 예고도 없이, 깨어 있음으로 이동이 이루어진다.

자아의 죽음과 함께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고 황홀한 새로운 경지가  열렸다. 에고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순간에는 공포가 다가왔다.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허무 자체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왔지만  에고가 죽은 그 자리에는 참나(참자신)가 들어섰다. 모든 것이 오롯이 드러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참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하나는 온전히 모든 것이었고, 완전했다. 모든 신분을 뛰어넘어, 모든 성을 뛰어넘어, 심지어는 인간성 자체를 뛰어넘어, 하나는 이제 더 이상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영적인 깨달음의 어느 경지에 이르면 신체의 병은 저절로 없어지거나 가벼워진다. 육체는 예정된 과정을 밟은 후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육체는 나라기보다는 방 안의 가구 같은 또 하나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황홀경이 절대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추락은 우리의 여정을 힘겹게 하며, 상황을 환원시키는 데는 커다란 의지가 필요하다. 황홀경의 영광을 포기하고 싶지만 무아경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 버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예기치 못했던 두려움, 절대적으로 혼자라는 외로움이 일어난다. 나는 비존재의 두려움이 엄청나서 번번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번민에 사로잡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새우고 나면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뚜렷이 느껴졌다. 이것은 극도의 노력을 아끼지 말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존재에 대한 욕구마저 항복받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전부와 무를,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하게 된다. 이때가 가장 어려운 고비이다.


이 정점에서 존재에 대한 신기루를 초월하게 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으며, 다시는 돌아올 수가 없다. 그러나 자아의 마지막 대전환인 이 지점에서, 홀로 남아 있는 존재와 비존재의 이원성을 푸는 것은, 우주적 신성에 모든 것을 던짐으로써만이 가능하다. 거기에서는 어떠한 개인적 의식도, 선택도 남아 있지 않다.


그 마지막 단계는, 그 때, 오직 신에 의해서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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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back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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