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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되었다면 2012년 12월 48%는 멘붕이 아니라 광화문과 온나라 곳곳에서 '브라보'를 외치며 단맛나는 술잔을 나눴을 것이다. 물론 51%는 멘붕에 빠져 쓰디쓴 술잔을 들이켰을 것이다.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란 부르는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정했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참 의미없는 것이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나왔다면 나라꼴이 이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10년 동안 정치에 몸담았던 유시민은 지난 달 "직업으로서 정치이 떠난다"며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정치는 글쓰기보다 훨씬 더 어렵고 여러모로 뜻깊은 일"이라고 했다. 글쟁이다운 답이다. 그러면서 정치는 자신에게 "내면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소모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멀쩡한 사람도 정치에 발을 내딛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종종본다. 정치라는 환경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데 가면을 벗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내면을 소모하는 정치를 떠난 유시민은 "글쓰기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곧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이유인게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삶을 얽어맸던 관념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나,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본문에서)


왜 정치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직시할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없을까?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지만, 사람은 자신을 비판하고 채찍질 하기보다는 남에 비판하기를 더 좋아하고, 더 잘한다. 정치인은 더 그런 모양이다.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됐는데 야당과 협상과 타협보다는 굴복을 요구하면서 '난 참좋은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그분을 보면 알 것같다. 그리고 정치란 내면을 채우기보다는 소모하는 것이라는 유시민 주장은 헛말은 아니다.

유시민은 이런 말을 한다. "이젠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정직하게 말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해진 내면을 추스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이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한다.

정치판을 야수의 탐욕이라고 표현한 유시민을 보면서 왠지 마음 한켠이 짠해진다. 유시민은 '노무현'처럼 반대세력과 맞서 싸운 적이 많다. 이런 그를 김영춘 전 민주당 의원은 "유시민은 왜 저토록 옳은 얘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평했다. 김 전 의원 말에 유시민도 "나는 논리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며 "맞다'고 인정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비판하는 이들도 생겼지만, '노빠'가 '유빠'로 거듭날 정도로 열렬 지지하는 이들은 '노무현 다음은 유시민'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 나도 포함된다.

하지만 유시민은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하게 만든 정치를 떠났다.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유시민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짠한 이유다. 하지만 그의 변명을 듣다보면, 짠한 마음을 거두어야 할 것 같다.

"정치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다(중략)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민처럼, 변덕스러운 여론을 언제나 최고의 진리로 받들어야 하는 정치인의 직업윤리가 너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위선으로 보인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본문에서)

"인간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 속에는 자신의 존엄이 훼손당한 정치인이 과연 시민들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우리는 대의를 위해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지난 선거때도 단일화는 '대의'였다. 유시민의 말을 꼽씹어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존 칼빈(장 칼뱅)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난 개신교 목사이면서 '칼뱅주의자'다. '자유주의자' 유시민은 개인을 사유와 행위의 주체라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단주의는 배결될 수밖에 없다. 그 중 하나가 칼뱅이다. 유시민이 집단주의 또는 전체주의라고 지목한 공산주의자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주와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다.

폴 포트를 전체주의자로 규정한 것에는 쉽게 동의했지만, 칼뱅주의자인 나에게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칼뱅은 전체주의자라며 강하게 비판한 것은 솔직히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아직도. 하지만 그의 비판은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무시무시한 폭력을 동원해 공포정치를 조직화한 지성적 금욕주의자 칼뱅의 동기는 고상했다. 그가 모든 '죄인'에 대해 냉혹했던 것은 악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도덕적 품성을 길러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계속되는 형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포정치를 밀고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여한 의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신학적 정치적 견해에는 오류가 없다고 확신했다. 장 칼뱅은 현란한 신학 이론으로 무장한 광신자였다.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정신과 심리학자들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장 자크 루소가 나타나 칼뱅의 공포정치를 완전히 끝내는 사상의 혁명을 이룰 때까지 제네바 시민들은 무려 2백 년 동안 자유와 개성과 다양성이 사라진 무덤 속에서 삶의 의미와 환희를 빼앗긴 채 살아야 했다.(본문에서)

'광신자', '사이코패스','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을 고문으로 죽였다'같은 말은 신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당연히 가르칠 마음도 없다. 아마 유시민 주장에 칼뱅주의자들은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칼뱅 신학사상에 영향을 받은 청교도가 아메리카로 건너가 미국을 건국하고 그 정신이 면면히 이어나온 것을 안 다면 유시민이 주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칼뱅주의자만 아니라, 개신교의 절대주의와 배타주의는 태생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거북하지만, 칼뱅주의자들은 유시민의 신랄한 비판을 새겨야 할 것이다.

"직업으로서 정치를 떠난" 유시민은 황폐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올까? 유시민은 지난 2007년 8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연인 유시민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별로 안 행복하다. 더 행복한 길이 다른 데 더 있는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시민에게 정치는 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자기가 바라는 마음으로 채워지기 어렵다. 내가 선출직 공직자로서 갖는 책임감이 있는 한편, 자유와 개인적 행복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늘 후자가 우세한 분위기에서 정치생활을 했다면 최근 2년 동안에는 책임의식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책임의식이 주도하고 있다. 자유의 길은 접었다.

사람은 누구나 복수의 페르소나(persona)를 가지고 있다. 집에서 자상한 아버지가 혹독한 상사가 될 수 있고, 학교에서 인기짱인 남자가 애인에겐 폭력남이 될 수 있다. 나는 공직자로서 마땅한 페르소나를 표출하지 못했다. 마음의 힘이 곧 내공인데 그런 점에서 박근혜씨를 보면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놀라운 사람이다. 초인 수준이다. 내가 배워야 할 점인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굉장히 필요한 강점이다."-2007.08.22<오마이뉴스>"내가 싸가지 없다고? 맞는 말이다. '유시민 지지' 떳떳히 말 못한 '유빠'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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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back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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