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시대정신(시민광장)

진정한 주류한테 주류 몫을 돌려주려고 노력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싶다.

goback01 2009. 6. 2. 19:49
“검찰 유죄결론뒤 짜맞추기 수사…타살적 요소 있다”

“받은돈, 빚갚는데 쓴게 아니라 집사는데 쓴것 알고 충격
노 전 대통령, 참여정부 가치 매도될까봐 고통스러워해”


1일 오후 부산시 거제1동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만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뒤 일주일 동안 치러진 국민장의 여파 탓인지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믿기지 않는 듯 “청천벽력 같은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 전 실장은 이날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지난 몇달 동안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느꼈던 수사의 문제점을 비교적 담담하고 자세히 지적했다. 또 변호사 생활을 한 동료이자 정치적 동지로서 지켜본 ‘인간 노무현’에 대한 그의 기억도 털어놨다.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지난주 끝났다. 서거 뒤 소회와 심정은?

“대통령님 모시는 데 여러가지 부족했지 않나 하는 마음에 비통하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가졌을 고뇌라든지 정신적 고통을 더 세심하게 헤아렸어야 했다.”

-검찰 수사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의 돈’을 처음 안 게 언제인가?

“올해 2~3월께다. 정상문 전 비서관이 박 회장 구속 뒤 봉하마을에 여러 차례 내려와 말씀을 드리려다 차마 말을 못하고 되돌아가길 반복했다고 한다.”

-100만달러 이야기를 처음 듣고 노 전 대통령이 혼절했다는데?

“정 비서관이 봉하에 내려오면 늘 대통령을 먼저 뵈었는데 그날은 여사님을 먼저 만났다고 한다. 대통령이 의아하게 생각해 뭘 하는지 두 분이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권 여사가 넋이 나가 울고 있고 정 비서관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제야 정 비서관이 돈 이야기를 했고 나중에 정 비서관 표현에 의하면 ‘탈진 상태에서 거의 말씀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노 전 대통령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거란 예측을 못했나?

“그 전까지만 해도 측근이라 할 만한 주변 사람들 예를 들어 한명숙, 이해찬 총리도 샅샅이 조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그래도 우리 쪽 판단에는 ‘현 정권이 자꾸 노 전 대통령이 정치 활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대통령의 자금원이나 활동 반경을 제약하려고 주변 조사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작 자기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린 뒤 논란이 가열됐는데, 글 올릴 때 노 전 대통령의 심리적 상태는 어땠나?

“우선 첫 사과글을 올릴 때는 당시에 권 여사나 정상문 비서관한테 들은 게 있으니까, 노 전 대통령은 부부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고 정 비서관이 형사상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은 정 비서관이 받았다는 3억원과 100만달러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다. 하지만 이후에 돈의 성격이라든지 점점 사실관계를 아시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법적 책임과 별개로 도덕적인 책임을 통절하게 느끼게 됐다. 그 돈이 그냥 빚 갚는 데 쓰인 게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 집 사는 데 쓰인 것을 알고 충격이 굉장히 크셨다. 그런데도 홈페이지에는 수사를 정치적 음모로 보고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글들이 올라오니까 ‘그건 아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강금원 회장에 대한 글은 좀 별개인데, 당시 강 회장이 뇌종양 상태라는 점 때문에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횡령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

“사적인 잘못을 넘어서서 공금을 횡령하기도 했다는 면에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들이 퇴임을 대비해 정 비서관이 준비한 것이라는 점을 아시기 때문에 더 괴로워했던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이 왜 그런 거짓 진술을 했는지 밝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이유에 대해 저희 나름대로 짐작하는 바도 있고, 직간접적으로 들은 바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이다. 물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조사 때 스스로 자신이 유죄임을 입증하는 대질에 참여하겠다고 확인서까지 썼다. 이것이야말로 박 회장이 검찰의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은 처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 회장은 작년 11월부터 장기간 검찰 수사를 받아왔기 때문에 검찰이 바라는 대로 진술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와 별도로 대통령은, 기소가 되고 사건이 검찰 손을 떠나면 박 회장이 진실을 말할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법정 다툼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믿고 계셨다.”

-고급 시계 선물 등이 보도됐을 때 ‘참 나쁜 검찰’이라고 비판했는데 수사 방식을 평가를 한다면?

“노 대통령 재임 때 우리는 수사기관이 고문, 가혹행위 등 불법행위를 하는 걸 어떻게 막느냐는 부분에 굉장히 많은 논의를 하고 상당 부분 진전이 있었다. 그런 문제가 극복됐는데, 이번 수사에서 나타난 현상, 즉 검찰이 수사 과정을 매일 언론에 생중계하듯이 브리핑하고, 그걸 통해서 수사 상대방을 비난하고 결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문제 등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포토라인에 세워 심리적 압박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런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이번 사건이 절절하게 보여준 것 아닌가. 이번 사건 평가를 떠나 검찰 스스로도 되돌아볼 문제이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기준을 세워야 할 것 같다. 검찰 수사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말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을 놓고 검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진 않다. 피의사실 공표나 수사 내용의 생중계가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지 드러났으니 검찰도 이제 고민해야 한다. 또 하나, 이번 검찰의 수사는 유죄라는 결론을 처음부터 내려놓고 모든 조사를 거기에 맞춰서 해나갔다. 나중에 노 전 대통령이 ‘지금 수사팀에서는 다른 결론 내리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시더라. 두터운 벽을 느끼신 거다.”

-소환 조사 전후 노 전 대통령의 심리 상태는 어땠나?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소환조사를 받는 사실 자체에는 담담했다. 국가기록물 유출 사건 때도 검찰이 방문조사 이야기를 꺼내길래 ‘내가 나가서 조사받겠다’고 말할 정도로 담담했다. 대통령을 지낸 분에게 소환조사는 안 된다거나 하는 특권 의식은 전혀 없는 분이셨다.”

-검찰이 소환 조사 때 대국민 사과를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조사 과정에서는 대통령이 성의 있게 임하셨고, 예의도 다 차리셨다. 조사하는 검사들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충분히 했다. 다만 조사하는 이들이, 열심히 설명해도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았다. 검찰이 결론을 내놓고 있었던 것이 문제이지, 형식은 무리한 게 없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사용처를 밝힌다고 했기 때문에 신병처리가 늦어졌다’고 말한다.

“사실이 아니다. 소환조사를 마친 뒤 며칠 만에 용처 부분을 밝히는 서면진술서를 제출했다. 그것으로 다 낸 것이다. 검찰이 그걸 더 확인하려면 권 여사를 소환해야 하는데 분명한 설명 없이 2~3주를 미룬 끝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부분만 봐도 검찰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천신일씨 수사는 우리와 별개다. 저는 검찰이 천신일씨 수사 때문에 일정을 조정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을 처벌하기에 수사상 미흡했기 때문에 보완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검찰 소환조사 뒤에 3주 동안 공백이 있었고 그 기간에 피의사실 등이 많이 흘러나왔다. 그 때 노 전 대통령의 심경은 어땠나?

“법적인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우리는 자신했다.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였으며, 대통령 진술과 박 회장 진술이 엇갈리는데 박 회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도덕적 책임을 통절히 느끼면서, 검찰하고 법적 책임을 놓고 다퉈야 하는 상황을 참으로 구차하게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다 받았다고 인정해 버리는 게 낫지 않나라고 여러 번 말했다. 내가 조사받는 것으로 조사 마무리되길 바랐던 것이고, 다만 용처를 밝히기 위해 권 여사 재소환 정도는 예상했다. 그런데 아들 등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더더욱이나 집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무너지면서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참여정부가 지향했던 가치까지 깡그리 부정당하는 상황이 되니 절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작 우리는 여사님이 자신이 모든 원인을 제공했다고 자책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할 수 없이 자리를 함께했지만, 여사님은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들어오면 다른 자리로 가고는 했다.”

-수사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력에 의한 기획수사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향후 국정조사가 이뤄진다면 규명해야 할 대상은 뭐라고 보는가?

“정치적 함의가 담긴 사건일수록 검찰의 정치성이 배제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참여정부에서 굉장한 진전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아직 공고하다고 볼 수 없다. 검찰의 중립성 공고화가 첫 과제인데, 대검 중수부의 존재도 생각해봐야 한다. 강력부든 공안부든 직접 수사 권한이 없는데, 유일하게 특수수사를 맡는 중수부만 직접 수사를 한다. 참여정부 때 해결하지 못했는데, 중수부를 폐지해 기능을 분산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연구해봐야 한다. 이번 사건도 기획수사를 하다보니 생긴 일이다. 강금원 회장 사건도 처음엔 안희정씨 정치자금법 수사하다 그게 자신이 없으니 결국 기업 깡그리 뒤져서 횡령으로 구속했다. 애초 수사 목적은 사라졌는데, 이런 식이면 성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서민에게 주류몫 돌려주려 애쓴 대통령”

-예상 밖의 조문과 추모 열기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것이 전부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나 지지 표현으로 보기에는 … 그렇다면 불과 얼마 전까지 비난 일색이었던 싸늘했던 민심은 무엇이었는지…. 우선은 두 가지가 복합된 것 같다. 첫째로는 이분이 목숨을 버린 다음에야 그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알게 되면서 공감과 안타까움과 자책이 있었던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죽음으로 몰고 간 상황에 대한 분노, 즉 참여정부의 가치들이 깡그리 부정되면서 민주주의나 인권, 복지 등 모든 면에서 후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한 분노가 복합된 것 아니겠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꼭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러가지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들이 그분을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으니 타살적 요소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의 파면을 주장하고 있다.

“제가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한쪽에선 책임론이 대두하는 반면에, 또 한편에선 노 전 대통령이 유서를 통해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기류도 있다.

“대통령 말씀대로 우리 입장에서 누군가를 원망한다거나 미워한다거나 그에 대해서 책임을 추궁한다거나 그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에 드러났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반드시 사회적으로 논의되면서 개선되고 극복되고 이 일이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국민들은 장례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서민 대통령’ ‘국민의 편에 섰던 대통령’으로 기억해냈다.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어떤 인물로 기억하고 싶은가?

“노 대통령을 비주류의 정치인이라고들 표현하는데, 사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주류는 수적 다수로 봐도 서민들이고 지방 사람들이다. 그동안 질서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진정한 주류 아니냐. 그럼에도 소수의 특권적 사람들이 주류 행세를 하면서 진짜 주류 행세를 할 사람들이 소외되고 배제되어 왔다. 진정한 주류한테 주류 몫을 돌려주려고 노력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싶다. 어떤 부분은 성취를 이루고 어떤 부분은 좌절하기도 했지만, 노 대통령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은 분명히 심었다. (그런 과제를) 앞으로 다른 정치 세력이 언젠가 이뤄야 한다는 당위성을 분명히 제시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면 되겠다.”

부산/박창식 선임기자, 이수윤 석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