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習作's/습작들

원칙있는 세상 (2007.2)

goback01 2008. 5. 22. 11:53
 

벅찬 요 며칠이었읍니다. ....내린 결론는
“원칙있는 세상”입니다.


“원칙있는 세상”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결국 원칙 그자체가 주인이 될수는 없다는 것이죠.

우리가 원칙이란 가치를 이야기 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그 원칙 자체의 고귀함 때문이 아닙니다. 원칙으로 움직여가는 세상을 위해서죠.. 

원칙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이에게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야 합니다.

헌데, 상대의 존중을 전제하지 못한 우리들의 미숙함으로 많은 이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봅니다.

원칙의 존재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원칙의 세상을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각론(생각하는 방향의 차이)에 너무 집착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겟습니다.

차이(differance)는 잘못(wrong)이 아닙니다. 차이는 차이일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의 하지 않겟지만  전 기초당원제 논쟁 역시 차이일뿐이란 시각입니다.

헌데, 그러려니 했던 열린우리당에서 기초당원제 수용이 참정연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돌아오자 오만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더군요.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듯 합니다.


어제 회원총회 토론회를 보며 느낀점은 자부심 이었습니다.

분명 차이를 차이로 인식하고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래서 진정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봤습니다. 또한 원칙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개혁세력이 부족했던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참정연의 회원총회에 참석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조직은 참여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합니다. 참정연은 나에게 자부심을 주어야 합니다. 내 스스로 자부심을 만들어 내는데는 한계가 있죠 .

그리고 그 자부심에 전제조건은 우리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부심 유지가 가능합니다. 니편 내편 논리로는 자부심이 불가능 하죠.

각론에 몸을 던져 각을 세울 시기는 아닙니다. 원칙의 존재은 인식되어있죠.

이제 우리가 몸을 던져야 할 것은 서로의 공감입니다.


합리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노무현 유시민....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원칙을 주장하는데도 왜이리 힘들걸까요? 

왜 그들은 분명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있는데 왜 원칙의 주장만이 부각되고 있을까요?

우리들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신뢰의 부족 때문이지요.


우리가 향해가야 할 정론은 자기 정체성을 전제로 상대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상대를 먼저 인정해주고 원칙을 인정받는, 대우해주고 대우받는...서로 신뢰하는 새로운 정치문화입니다.

우리에게 변할수 없는 정론은 신뢰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위한 논의가 되야 할 것입니다.


신뢰를 쌓아가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조급하면 안되요.


전에 우리당을 탈당한 김성호 전의원, 임종인, 이계안, 최재춴의원등...

각론이 다름을 이야기 할수는 있지만 사람에 대한 판단은 조금 시간을 두고합시다.

천정배에 다져진 신뢰, 믿음을 한번에 이해할수 없는 선택으로 포기할수 없습니다.  조금 더 지켜 보렵니다.


간만에 이야기 하니까  계속 주절대게 되네요.....